5년전, 나는 다니던 회사에 염증을 느꼈다. IT회사라 끝도 없는 야근에 지치기도 했고, 더 이상 여기서는 발전이 없을것 같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영혼을 팔면서 돈을 버는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때 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면서 조직 사람들에 대한 회의감도 컸고, 실망감도 컸다. "그래, 떠나야겠다."


사표를 제출했다. 상담도 받고, 내가 회사 고객들의 정보를 모두 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일을 했던지라, 나에게 서약서도 쓰라고 했다. 회사 규모는 정직원 100명도 안 되는 작다고 하면 작을 수도 있는 회사였는데, 지금까지 서약서 쓰고 나가게 한 경우는 내가 처음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경쟁사에 가지 말아달라는 당부까지 받은 나로서는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다.


회사를 그만둔 후, 나는 2~3개월 후 남미여행을 가고 싶어서, 스페인어 책도 구매하고 남미 여행 리뷰책들도 두어권 샀다. 퇴직금과 그전에 모아둔 돈이면 충분히 남미 1개월 여행이 가능하지 싶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프로젝트가 하나 들어왔다. 4개월짜리라고 했는데, 남미 여행 간다고 거절했다. 그런데 그쪽 회사에서 급하다면서 급여를 많이 불렀다. 그거 받아서 남미 여행 가면 더 풍족할거라는 꼬임과 함께 나를 유혹했다. 어쩌다가 면접을 보고 출근을 하게 되었다. 4개월이라던 프로젝트는 6개월이 지나서야 끝났지만, 나의 통장 잔고는 풍족해졌다.


이거면 된거라고 위안을 삼고, 남미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렸다. 내가 남미여행 갈거라고 하니까 친구들이나 친한 지인들이 남미 여행에 대해 검색을 해보고, 너무 위험하다며 한사코 말렸다. 그리고 내가 읽은 책이나 블로그 글들에도 강도를 안 당한 사람들이 없었다.

그때가 겨울이라 추위를 싫어하던 나는 결국 대만과 싱가폴행을 택했다. 대만에서 일주일 여행을 하고, 싱가폴에서는 4주간 아파트를 임대해서 살면서 여행을 하다 왔다. 요새 이런 여행이 유행한다던데, 나는 얼리아답터인가보다.

이때 대만 가면서, 중국어 하나도 모르고, 한자도 접하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서 걱정했는데 바디랭귀지 하면서 어찌 돌아다녔다. 그리고 싱가폴에서는 대충 영어하면서 돌아다녔다.

싱가폴에서는 4주를 지내다보니 나름 여러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대만인 친구를 한 명 사귀게 되었는데, 그 친구 덕에 중국어 한 마디를 배웠다. 그 때 배운 말이 "晚安." 이었다. 난 잘 자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그냥 전화 끊을 때 그말하는게 로맨틱한 느낌이라 좋아해서, 잘자는 중국어로 뭐라고 하냐고 물어서 배웠던 말이다.

그 뒤로도 나는 중국어에 관심이 없었다. 중국어 하면 한자 투성이에, 성조도 네개나 있어서 어려울거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게임을 하는데 그 중에 중국 북경의 유학생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지난 번 중국어 롤 얘기에서도 언급했듯이, 내 취미는 게임이다. 이 아이들은 온라인상으로만 알고 지내는 친구들이었는데 여행 다녀오기 전부터 약 1년간을 알고 지냈다.

그 아이들 중 한명이 왜 누나는 대만, 싱가폴은 가면서 중국은 안 오냐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중국하면 그냥 좀 더럽다거나 낙후되었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안 가는거라고 했더니, 마침 방학이니 관광시켜준다고 오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북경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때는 겨울방학때라 북경의 겨울 바람은 너무 차고 매서웠다. 하지만, 북경 공항에서부터 느꼈던 중국은 나의 생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북경 시내로 들어서니 고층 빌딩이 너무나 많고, 서울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나마 다른 점은, 건물들이 서울에 비해서 널찍한 건물이 더 많더라는 것이었다. 어떤 건물들은 차라리 높게 짓지 왜 넓게만 지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대륙의 힘인가 하면서, 넓은 땅덩어리가 부럽기도 했다.

북경 여행을 하면서, 그 아이가 내 가이드 역할을 해주었다. 그때 중국인과 그 아이가 하는 중국어 중, 내가 추측해서 맞춘건 숫자들이었다. 나는 중국어라고는 니하오마밖에 모르는 상태였다. 중국어 숫자는 한국어 숫자와 발음이 비슷해서 알아듣기 쉬운 편이었다.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그냥 눈치로 이런말 했지 이런말 했지 하고 물어봤는데, 대충 맞춰서 그 아이도 놀랐다.

혹시 고등학교 때 중국어 배운 적 있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나는 중국어는 니하오마밖에 모른다고 했다.

4박 5일 돌아다니면서, 중국어를 난생 처음 가까이서 접해보게 되었다. 돌아다니다가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가끔 이건 이렇게 읽는거라고 얘기도 해줬지만, 배울 생각이 없어서 패스했다.


서울에 돌아온 후, 그 아이와 스카이프를 했다. 중국어 배워볼 생각 없냐고 소질 있는것 같다고 했다.

"나 전에 학교 다닐 때, 영어 잘 했어서 언어에 대한 감각이 조금 나은 거일 수도 있는데, 중국어는 별로 내키지 않아."라고 했다.

그 뒤로 그냥 별 생각 없이 빈둥빈둥하며 시간을 보내며 몇 달을 놀았다.

그런데 가끔 그 뒤로 중국어 생각이 났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성조가 있다보니 좀 특색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아이와 상의한 뒤, 나는 중국어 학원에 등록했다.

처음 중국어 학원에 등록하면 첫 달은 병음만 배운다. 1개월 총 12회 강의였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중국어 발음 배우기, 인강도 끊어서 집에서 보고 연습하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이 끝나갈 때쯤, 나는 "북경에 괜찮은 어학연수 학교나 학원 알아봐줘."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병음만 배우고나서 학원은 다니지 않고, 북경으로 갈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비자를 신청하고, 짐 꾸리기를 하며 2개월째를 보내고 있었다.

90일 관광비자를 끊어놓고, 욕심에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사들고, 나는 북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